2009년 3월 21일
원명은 1707년에 지은 황실의 별장이다.
중국 3000년의 전통 건축 기법과 유럽의 정원 건축양식을 모두 접목해 건축되어 화렴함의 극치를 달렸지만,
1860년과 1900년에 각각 영.불 연합군과 8국 연합군의 침략을 받아 온통 폐허가 되어 버렸다. 그 때 연합군이
빼돌린 보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오늘날 원명원의 보물을 보려면 영국이나 프랑스로 가야 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이다.
이곳은 현재 '북경시 국방 교육 기지'라고 할 만큼 중국인에게 외세 침입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교육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총면적 중에서 수면의 면적이 35%정도이다.
원명원의 정수, 서양루 유적 경치구
이탈리아의 선교사와 프랑스의 천문학자를 중심으로 설계가 이루어 졌다.
영.불 연합군의 침입 때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석조로 된 부분은 그나마 많이 남아서 현재까지 그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대수법 - 엄청난 화려함을 자랑하던 분수의 유적
석탑식 건축양식으로 만든 분수. 타원형의 국화 모양 분수 안에는 분수대가 있었으며 좌우로는 13단계의 분수
탑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모두 한꺼번에 물을 뿜는 모습은 대단한 장관이었다고 한다.
펜으로 대수법을 그리고 있는 어느 중국 미대생(?)ㅋㅋ 자기 그림 사진찍으면 돈달라 그럴까바 뒤에서
줌땡겨서 캐취~ㅋㅋ쫌 그리네??
관수법 - 황제 전용 분수 감상석
대수법의 남쪽에 위치한 관수법은 황제가 앉아서 분수를 감상하던 전용 보좌와 석조 병품을 말한다.
하여간 별게 다 있네...
황화진 - 베르사유 궁전을 닮은 유럽식 미궁
가운데의 8방 서식정을 중심으로 펼쳐진 정방형의 미로로 유럽식 미궁을 본떠 만든 곳이다. 이 미로의 모든 벽을 합한 길이가 무려 1600여m.
매년 8월 15일 밤이면 이곳에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황제가 연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때 궁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손에 노란 비단으로 만든 연등을 들고 미로로 들어가서 그중 가장 먼저 중심의 정자에 도달한 사람에게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 밖에도 황제와 후궁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단다..
원명원의 12지신 동상...대부분 약탈 당했고 아직도 상당량이 중국에 돌아오지 않았단다..이것들은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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